이나라는 단풍이 한국만큼 멋있지 않다. 그 이유는 계절의 온도차가 크지 않고, 나무는 잎이 넓은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많아 색이 변할 나무가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도 Arrowtown이라는 동네는 가을단풍이 좋다. Arrowtown은 유명한 관광도시 Queenstown에서 차로 약 15-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시내 한복판은 약 100여년 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여 관광객들이 그 동네 곳곳에서 100-150년 전 느낌을 거의 느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나라는 관광이 아주 큰 산업 중의 하나라 나라 전체 혹은 도시마다 주제에 맞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는데 Arrowtown은 그중 하나 Autumn festival 즉 가을축제를 그들의 상품중 하나로 하고 있다. 이 가을축제에 다양한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Parade다. 그리고 여기 Parade에 Queenstown 사는 한인들이 사물놀이를 갖고 참가한다.
사물 놀이 준비
집사람이 사물놀이를 하다 Queenstown 사물놀이 팀과도 오래전에 알게 되었고, 몇년전부터 그 사람들과 같이 Arrowtown 축제 퍼레이드에 참가 한다고 하다가, 금년에 시간이 맞아 참여하게 되었다. 집사람은 그들과 같이 Parade를 하고 나는 운전해주고 가방 들어주고 뭐 사진 몇장 찍는 Support crew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Parade 이틀전 Queenstown leader가 사람이 많지 않으니 나도 같이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전에 태평소를 사물놀이 팀과 같이 한번 분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하면 어떻겠냐 뭐 그런 이야기 였는데, 태평소를 잘 부는 것도 아니고, 연습 한지도 오래 되고, 연습 할 장소도 없으니 그것말고 필요한 뭣인가 하겠다고 했다. 정 할 것이 없으면 옷 차려입고 깃발이라도 들고 따라 가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페레이드는 4월26일 토요일 이고 25일은 여기 현충일인 ANZAC day 이다. 집사람과 둘이 25일에 출발해서 행사장 근처 숙소에 도착했고, 거기서 저녁 쉬고 그 다음날 낮에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Leader가 나를 보더니 머리가 상모가 딱 맞을 것 같다며 기다란 줄이 달린 상모를 준다. 난 당연히 전에 상모를 써본 적도 없고 그걸 돌려본 일은 당연히 없다. 그런데 대충 쓰고 살짝 돌려보니 마치 훌라후프 돌리는 것처럼 한 다섯바퀴 정도는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Parade라 한군데서 여러가지 하는 것이 아니고 그걸 돌릴만한 공간이 나오면 살짝 돌리는 것이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연습이나 하라고 해서, 제대로 쓰고 꽉 조여매고 넓직한 공간에서 나름 연습해 보았다.
사물놀이 팀이 맞춰보는데 리더가 꽹과리, 장구 두개, 북이 두개인데 징이 없다. 징 없이 쳐보니 소리가 영 아니다. 그러더니 나보고 상모 벗고 징을 치라고 한다. 아, 징이 훨씬 편하다. 내가 사물놀이는 모르지만 각 마디에 첫박자 혹은 두번째 마디의 첫박자 치면 된다. 혹시 한번 빼먹어도 음악 진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징은 전에도 다른 곳에서 정말 잘하는 꾼들 모여 놀 때도 쳐봐서 나름 자신이 있고, 오래전에 타악기 치는 법 간단히 배운 적이 있어 맘이 놓였다.
페레이드
페레이드에는 사물놀이 하는 6명이 앞에 서고 그 뒤에 한국 아이들이 청사초롱과 소고를 들고 따라 온다. 그래서 아이들 한 7-8명 까지 제법 parade 숫자가 되었다. Parade가 시작되자 백파이프 팀이 맨앞에 서서 연주를 한다. 역시 이나라 영국계 심지어 미국 쪽도 뭔가 행사가 있으면 백파이프가 앞에서 이끄는데, 어딘지 모르게 심오함과 경건함을 주는 소리다. 백파이프와 드럼팀이 맨 앞에 서고 그 다음 뭔지 모르는데 아마도 Scottish (dance) team이 있던 것 같고 우리는 여섯번째다. 총 30팀 남짓 정도 되니 여섯번째면 꽤 앞에 선다. 우리 바로 앞에 이 행사에 기부금을 많이 냈는지 부동산 업자 차가 두대가 섰다. Parade 행진하는 팀의 길이는 다합쳐 한 200미터 되는 것 같았고, 걸어갈 전체 길이는 약 300미터 정도 인 것 같았으며, 거기 좌우에 사람들이 마치 만원버스 처럼 다닥다닥 붙어 열심히 구경하고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관객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 마을 전체 주민 숫자 정도 약 2-3천명 정도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페레이드 후 넓은 잔디밭에 한국 가족들 다 모여서 식사를 한다. 그러니까 이 날이 Queenstown 한인 야유회 날이다. 나는 거기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뭘 하고 살까 궁금했는데, 거기 온 한인들 가족을 보니 아이들 5살-10살 정도의 젊은 가정이고 어떤 분은 김밥집, 어떤 분은 카페, 어떤 분은 택시 등 관광 도시에 맞는 일을 하며 살아 가고 있었다. 건강하게 사는 젊은 사람들이다.
사진 설명
그날 사진사 한분이 정말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셨다. 준비할 때부터 계속 셔터를 누르시고 Parade 시에는 그분을 한 30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좋은 사진 많이 찍으셨겠지만 그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내 사진이 있다.
상모를 돌리는 연습하는 사진인데, 내가 그분과 조율해서 뭘 한 것이 아닌 내가 연습하는 것을 그냥 찍어 주신 것인데, 마침 기가막히게 좋은 자리에 서서 돌리기 시작하는 장면을 찍어 주셨다. 내 몸 동작과 상모의 줄이 살아 움직이듯 Dynamic 하게 잘 표현 되었고, 배경 단풍은 마치 나한테서 시작한 에너지가 나무를 타고 폭발해 터져 나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본 어떤 사진보다 멋진 사진을 하나 갖게 되었다.
나머지 사진들은 그날의 모습과 행복한 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외의 이야기
이석증: 상모를 돌리고 난 다음 날 거의 24시간 후 이석증 증세가 나왔다. 갑자기 아주 어지럽고 자칫 넘어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처음엔 왜 어지럽게 되었는지 몰르고 그냥 잘 놀다 피곤해서 그러나 혹은 다른 이유인가 하였는데 아마 상모를 돌리다 귀 근처의 작은 구슬이 빠져 나온 모양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되는 줄 알다 하루 반 지났을 때 다른 체조를 하다 이석증이 생긴줄 알았는데, 나중에 증세가 다 없어지고 상모 돌리다 이리 된 것을 알았다.
전에 병원에서 이석증 환자에게 빠져나온 구슬을 도로 넣는 체조/동작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일이 있어 유튜브로 가서 구슬 집어넣는 체조를 하고는 약 반나절 만에 좋아졌다. 즉 처음 어지럽고 만 하루 반 정도 고생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운동 하고는 약 4시간 이후부터 아주 좋아 졌다. 총 만 이틀정도 고생했는데, 어지러운 동안은 정말 조심스러웠다.
밤 줍기: Arrowtwon에서 Queenstown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밤나무 숲이 있다. 우리는 말만 들어보고 가본적이 없는데 이번에 숙소(airbnb)를 아예 그 근처로 잡아 3일동안 네번에 걸쳐 집사람과 둘이 얼만큼인지 모르지만 몇집이 싫컷 나눠 먹을 만큼의 밤을 줏었다. 밤이 마치 오래전 한국 토종밤처럼 자그마 한데, 썩지도 않았고 벌레 먹지도 않아 아주 품질이 좋고 맛있다.
단풍: 가 있는 3일 동안 화창하게 맑고 기온도 약 20도 정도 아주 좋은 날의 연속이었다. 화창하게 맑아 산에 있는 단풍, 동네에 있는 단풍, 호숫가 단풍, 이나라 살면서 가장 좋은 단풍 만끽하였다. 눈이 호강하고 맘도 호강하고 정말로 재미있는 3일간 이었다.
그외에 Ayrburn 이라는 Arrowtown 근처의 작은 관광객을 위한 곳에도 가보고 또 Millbrook이라는 골프장에 가서 집사람과 차도 한잔 했다. Leader분이 Millbrook 골프장 구경하라고, 숙소 가다 화장실 갈겸 들리라고 해서 가보았다. Millbrook 골프장 가보니 사람들이 왜 Queenstown 근처 골프장 골프여행을 떠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두군데 모두 정말 이쁘게 잘 꾸며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