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챙겨 앉아 막 한숫깔 뜨는데 전화가 온다. 열어보니 Private number, 이건 병원이다. 전화를 받으니 저쪽은 다급한 목소리로 Sarah라는 분이 전화 한다. 지금 교통사고 환자가 Helicopter로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는데 내가 통역으로 나와줄 수 있냐고 한다. Helicopter 도착 시간은 한시간 이내이니 가능한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한다. 교통사고와 같은 응급상황에 내가 현장이든 병원 응급실이든 갈 수도 있다고 통역자 교육에서 들었고 저렇게 다급한 목소리로 찾는 것을 보니 급한 모양이다 하고 한시간 내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한 시간은 6:45분이었다.
식사를 후루룩 마치고 얼른 샤워를 하고 옷챙겨 입고 차를 타고 내려가니, 저녁시간이라 병원 근처에 차 주차할 곳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대로 병원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가 마침 하나 있다. 6시가 지났으니 주차 요금도 걱정없다.
차 세우고 얼른 ED쪽으로 가 Reception으로 가니, 말도 꺼내기전 “너 Korean interpreter지” 하면서 저쪽으로 돌아서 안쪽으로 쭉 가면 되 하신다. 근 20년전에 큰 아들 손목이 살짝 상해서 한번 오고 그후 한 1-2년 후 작은 아들 운동하고 다리를 살짝 다쳐서 온 후 처음이라 응급실이 아주 낯선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다 그중 한분이 “너 Korean interpreter니?” 하면서 이쪽으로 와라 하고는, “네 자켓 내가 보관해 줄께” 한다.
그분이 가라는 곳에 가니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은 Resus1 이라고 되어 있는 곳으로 가운데 침대가 있고 그 주위에 초음파 기계와 이런저런 기계가 약간 있고 사방에 약품과 의료재료 선반이 꽉 차있고 사람들이 약 10명 정도가 있다. 사람들은 환자 한테서 튈지 모르는 피나 혹은 다른 액체를 막고자 아주 얇은 apron 모양의 비닐을 다들 입고 그 한가운데 커다랗게 자신의 임무와 이름을 써 놓았다. 즉 Doctor 2, Air way Doctor, Air way nurse, Nurse 2 등등이며 그중 대장격인 사람은 Trauma Team Leader 이렇게 되어 있었다. 참고로 여기서 Resus는 Resuscitation의 약자로 회생 살려내기 뭐 이런 뜻으로 보인다. 즉 죽어가는 사람 살려내는 곳, 다시 말해 아주 중상인 사람이 일단 오는 곳 같다.
곧 헬리콥터가 도착하고 환자가 응급실로 올 것이라 다들 둥그렇게 서서 기다렸고 나는 최선을 다해 빨리 간 덕에 6:25 경 도착했고 환자는 아마 한 6:40 쯤 도착한 것 같다. 환자가 도착하기 직전 사람들이 나한테 환자가 오면 이름, 생년월일, 복용약, Allergy 그리고 마지막 음식을 언제 먹었는지를 물어보라고 했다.
환자를 실은 침대를 밀고 Paramedics 두명이 들어와 환자를 놓고는 간단히 어디서 교통사고가 나서 어떤 상태였고 무슨무슨 약을 얼만큼 주사했고 등등 한 5분 남짓 설명을 하고는 간단한 질문을 받고 이동용 침대에서 응급실 침대로 자리를 옮겨주고 Paramedics 는 떠났다.
환자가 침대에 옮겨지자 우선 Doctor가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짚어가면서 상태를 Check한다. 그런데 4명의 환자가 오기로 했는데 제일 먼저 도착한 이 환자는 영어가 된다. 좀 지나서 보니 이분이 여행 Guider라 이나라에서 오래 살았고 영어가 잘 되는 것 같았고, 응급실이 처음이라 분위기가 영 어색한 나에게는 다행이도 환자가 영어를 하니 할 일이 없었고 그냥 상황을 지켜 보았다.
사람들이 약 15분간 간단한 Check를 하고 CT를 찍어야 한다며 침대를 밀고 사라졌고 팀이 일단 해체되는 분위기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없어졌다. 나는 다음 환자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어떤 사람이 오더니 다음 환자는 옆방으로 온다며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바로 옆으로 가니 Resus 2 라고 되어 있고 좀전 첫번째 환자 오기 전과 비슷한 분위기로 좀전에 있던 사람도 있지만 Team leader를 포함해 반 정도가 다른 사람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헬리콥테로 무슨 무전을 들어 피가 안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혈관에 압력을 넣어 피를 뿜어 내는 기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금방 올것 같던 환자는 안 오고 어떤분이 와서 당시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기상이 안좋아 병원에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거기서 Ambulance로 온다고 좀 늦어질 것이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저녁 안먹었는데 어디 가서 뭘 좀 먹고 오자하기도 하고 알았어 라는 표정으로 어디를 가기도 한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별로 앉을 생각이 없었으나 그밤이 얼마나 길지 모르니 일단 일이 없으니 앉자 하고 의자에 앉았다.
한 10여분 지나자 또 어떤 분이 와서 앞으로 20분 하고 가신다. 드라마 같은 곳에 보면 그리고 오래전 한국의 응급실을 보면 마치 돗대기 시장처럼 거기 있는 사람들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여기는 복잡하기는 하지만 사람들 표정은 차분하다. 다들 정신이 있어 보이고, 역시 급해 보이지는 않는다. 20분이라 말하고 5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이제 5분후면 도착한단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Driver라고 한다. 운전사와 관광안내원이 가장 앞에 앉아 사고시 제일 크게 다친 것 같다.
잠시후 Helicopter Paramedics 두명과 Ambulance Paramedics 두명이 침대를 하나 밀고 들어 온다. 역시 평화로운 분위기로 한 열명정도 응급실 의료인이 둘러싸인 곳에서 Helicopter Paramedic이 설명한다. 어디서 사고 나고 무슨무슨 약을 주입하고 상태는 어떠어떠했고 등등 이야기를 한다. 첫번째 환자 때는 못 봤는데 이번에는 누군가가 White board에 Paramedic이 이야기하는 것을 전부 적는다. 아마 약이름 위주로 적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한테 환자한테 영어 가능하냐고 물으란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환자에게 영어할줄 아세요, Can you speak Englich? 이 두가지를 몇번에 걸쳐 반복을 하자 한참 있다가 고개를 끄떡인다. 대답을 안 하길래, 갑자기 한국말이 튀어나와 이상했나 아니면 그 응급실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나 그런 생각 했봤다. 그런데 이분은 자꾸 고래를 쳐든다. 사람들이 고개 들지말고 편안히 누위있으라 하는데도 자꾸 고개를 들고 자신의 몸을 쳐다보고 한다.
의사가 아까처럼 몸 천체를 손으로 짚어가며 검사를 하고 아까는 초음파를 써서 몸 상태를 확인 했는데 이번에는 X ray를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찍는다. X ray 찍는다고 방 밖으로 여러번 나갔다 들어왔다 했고 대충 상황이 정리가 되었는지 다시 CT 찍는다고 두명 정도가 붙어서 침대를 밀고 간다. 침대를 밀고 가고 나자 나는 다시 할 일이 없어지고 다음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데, 두번째 팀 팀장이 나한테 상황를 간단히 설명해 주고 환자가 자꾸 머리를 드는 것은 약을 많이 써서 좀 이상해져서 그런 것이라는 말도 해준다. 이렇게 바쁜 응급실에서 통역자, 별로 하는 일이 없는 통역자를 손님이라 생각해서 인지 따뜻하게 한마디 해 준 것이다.
또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오래 되지 않아 두개의 침대가 같이 들어 온다. 세번째 침대를 보니 나이가 드신 남자분 같은데 이분은 영어가 안되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그래서 그분 옆에 붙어 있으려 했는데 누군가 나한테 잠깐 오란다. 따라가 보니 어떤 할머니가 Reception 뒤에 앉아 계신데 손목이 부러졌는지 아주 아파 하신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그분이 아주 말이 많다. 그래서 잠깐 얼른 통역해주고 세번째 환자한테 붙었다. 이번에는 앞의 두사람보다 가벼운 상처인지 Trauma Team이 구성되지 않고 그냥 의사 한둘 간호사 한둘 좀 작은팀이 이루어져 있어 보였다. 즉 Trauma Team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특별팀인 모양이다.
세번째분 옆에서 열심히 통역을 하고 있는데 네번째 침대에서도 나를 부르고 아까 그 할머니쪽에서도 부르는데, 할머니쪽에서는 좀 말이 안되는 말싸움 비슷한 것으로 자꾸 문제를 만드는 듯한 분위기 였다.
여기까지 하자. 그래서 그날 네시간 넘게 거기 있었는데 3시간이 넘으니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어 가도 되냐 물으니 CT 결과가 나오고 후속 조치가 결정되어야 갈 수 있다 했다 그런데 10:30분경 잘 아는 한국사람이 대사관쪽에 말을 전해주기 위해 나타났는데 나보고 피곤하면 집으로 가라고 해서,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 하고 10시 45분경에 나왔다. 다름날 연락해보니 그분이 1시까지 있었다고 한다. 내가 혼자 계속 있었으면 아마 거기 응급실에 그대로 입원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의 제대로된 첫 응급실 경험인데, 역시 키위들은 친절하고 침착하다.